정조대왕은 늘 백성을 살피고 헤아리는 성군이기도 했지만 효심 또한 지극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세상을 떠난 후 약관의 25세에 재위에 올라 애민과 개혁, 통합을 위해 노력했던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24년의 재위기간 동안 친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성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긴 후 11년간 총 13번의 원행(園行)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정조대왕 즉위 20년 해인 1795년(을묘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 간
그의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동갑이었던 아버지 장조의 회갑이기도 했습니다) 행했던
대규모 행차가 을묘년 화성 행차이며 이 기록을 자세하게 글과 그림으로 엮어 책으로 남긴 것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입니다.
정조대왕의 이 을묘년 원행은 어머니의 회갑연과 아버지의 묘소 참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건설 중이던 화성 축성의 명분과 점검, 친위대 장용영 군사들의 군사력 등을 재정비하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대규모 국가 행사로 시행되었습니다.
정조대왕은 재위기간 무려 66회에 걸쳐 행행(幸行)을 하였고 이는 단순한 행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차 길을 오가며 백성들의 생활 형편을 살피고, 글을 모르던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해결 해 주는 소통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행행(幸行) 중에 무려 3,355건의 백성들의 상언과 격쟁을 처리하였다고 하니
이 만큼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왕은 없었을 것입니다.
창덕궁에서 융릉까지 이어진 8일간의 행차는 정조대왕의 애민에 바탕한 소통정신과,
솔선수범을 통해 효행을 권장해가는 모습,
그리고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공감의 정치였으며,
이러한 노력이 백성 모두에게 전해졌기에 온 국민들과 더불어 즐거운 여민동락(與民同樂)의 국민축제로 승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행사는 서울, 수원, 화성이 공동재현하며
경기도가 함께 참여함으로서 더욱 풍성하고 성대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서울 노들섬에 주교(배다리)를 설치하여 한강을 건넜던 그 뛰어난 과학기술을 그대로 재현하고
10년 계획의 화성 축조를 2년 9개월 만에 완성 해 낸 수원 화성의 건축기술에서 정조대왕의 부국강병의 꿈을 잇고
화성의 현륭원에서 그리움을 넘어 사무침이 되었던 아버지 장조와 곁에서 깊은 효심을 다했던 어머니 헌경왕후에 대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잇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